Gift box, 2nd '넥스트NEXT' I read It

넥스트넥스트 - 10점
필립 K. 딕 지음, 권도희 외 옮김/집사재

1.
몸의 양식을 먹을 때 식성이 그러하듯 마음의 양식에 있어서도 그 종류를 가리지 않지만, 그래도 역시나 좋아하는 종류의 음식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좋아하는 기준이라는 것에도 통하는 바가 있는데, 아무래도 재미있는 맛을 내는 쪽으로 마음이 동한다.

재미있는 맛이라 하면, 어떤 것일까, 일단은 단편이 갖는 재미가 있다. 크게 얽매이지 않아서 혼자서 모든 것을 이루려는 마치 한그릇음식과 같은 단편은 그만큼 미묘한 맛의 밸런스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고식적인 비유를 들자면 마치 비빔밥과 같은 음식이 될 것인데, 실은 나는 비빔밥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적절한 영양균형과 질고 됨이 하나로 눅진해져버린 밥은 손쉽게 배부를지 모르나, 재미있는 맛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처음 먹는 사람들에게 비빔밥의 고추장 맛이 자극적으로 느껴질지 모르나 그것도 반복되면 상투적인 맛일 뿐, 그런식으로 고착화된 맛일 뿐이다. 그러면, 어떠한 것이 재미있느냐. 역시 아무래도 한쪽으로 치우치는 맛이 좀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 재미가 없다고 나쁜 음식은 아니지만 입의 즐거움을 위해서 먹으려면 아무래도 좀 색달라야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전체적인 균형은 부족할지라도 멋있는 요리들이 탄생하는 법이고, 또 활자로 인쇄되어 읽히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자유롭게 깊이 빠져들어가는 에세이, 별빛같은 생각들이 번뜩이는 SF, 거울 속의 물건을 꺼내듯 트리키한 미스터리, 절대적으로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검고 찐득한 '블랙'한 이야기들이 그러하다.

음, 그런데 사람마음이 또 쉽지가 않은게, 매일 실험적인 요리나 자극적인 요리만 먹다보면 평범하고 소담한 요리가 먹고 싶어지는게 간사한 사람마음이다. 그래서 장편과 같은 코스요리에 미덕이 있는데, 주요리는 그때그때 다른 특별한 요리일지라도 전체적인 요리의 흐름은 속을 편안하고 만족스럽게 만들어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 그 지나친 거창함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인데, 이를 적당히 가지치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면 그것이 정녕 대가의 반열에 이르른 솜씨라고 불러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이 책이 바로 그런 대가의 솜씨라고, 이런 책을 읽었다고, 그리고 읽어보라고 추천하기 위한 과례라고 생각해도 좋다.
물론 어찌보면 단편이고 SF, 그리고 장막 뒤에서 물씬 풍기는 세상에 대한 비꼼의 향기, 지나치게 내 입맛에만 맞는 음식일수도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순 없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책을 맛있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충분한 수가 있다는 자신감도 함께하는, 그런 과례말이다.

2.
넥스트와 페이첵, 임포스터와 토탈리콜, 스크리머스와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 여섯편의 영화제목 중 한 편정도는 누구라도 들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편, 한 장면 정도는 누구라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영화와 원작인 소설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기에 영화를 본 사람이라도 책을 읽어보아도, 혹은 반대로 책을 읽고 난 뒤에 영화를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렇게만 말한다면 흔히들 원작에 대해서 하는 말과 별로 다를 것은 없겠으니, 앞서의 여섯작품을 둘씩 묶은 이유에 대해서 한번 말해 볼까 한다.

3쌍의 작품들은 기본적으로는 책의 목차의 순서를 따랐지만, 재미있게도 각각 전자는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한 반면 후자는 호평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 물론 스크리머스는 조금 예외로 하겠지만 말이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생각해 봐야 할것은 원작에 무조건적으로 묶여서는 좋은 리메이크작품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다. 많은 경우 색다른 상상력에 고무받은 작가들이 거기에 자신의 상상력을 보태서 멋진 이야기를 꾸려나가다가- 마지막에 뱀꼬리마냥 끝나게 되는 것이 이 원작에 얽매인다는 점 때문일 것인데, 비교적 실패했다고 볼 수 있는 세 편의 영화들 역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런 점은 원작이 상세할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는데, 다행히도 필립 딕의 작품은 단편이기 때문에 비교적 그런 제약은 적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그것을 얼마나 벗어났느냐, 원작에 대한 훼손이라는 비판을 얼마나 작품성으로 이겨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을 것이고, 그것은 책과 영화를 직접 봄으로써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한가지 리메이크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이 경우에 활자로 표현된 내용을 얼마나 멋지고 설득력 있게 영상으로 구현해 내냐는 것이다. SF라는 장르의 경우에는 할리우드의 자본력을 통해서 우리가 여지껏 보지 못한 것을 스케일 크게 구현해내는 오락영화로 재현하는 방법이 왕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인데, 사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제껏 보지 못했던 것을, 신선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재현해 낸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활자를 통한 독자의 상상력은 자기자신을 가장 잘 설득해주지만 아무래도 영상으로 그것이 나타나게 되면 그런 설득력을 갖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관객의 호응이라는 것은 이 원작들을 소재로한 영화가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잘만들어졌느냐에 대한 평가, 그 자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구구절절한 평가는 필요가 없을 것 같지만 짤막하게 혹평과 호평을 곁들여 보자면, 넥스트의 시간에 대한 영상화는 나비효과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 반면,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가상디스플레이 장면은 지금까지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회구될 수 있는 명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사실 본인은 그렇게 인상 깊게 보지 않았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어쩐지 토탈리콜은 제5원소와 비슷한 느낌이 들고, 스크리머스는 머신들의 디자인이- 괜찮지만 세월이 느껴져서...많은 팬들이 그러하듯 나도 리메이크가 됐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3.
책과 영화, 두가지를 모두 봤을 경우에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 그것은 원작과 리메이크작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이 글의 맨처음으로 돌아가서 어떤 맛을, 어떤 효과를 노리고 있는가에 대한 비교이다. 필립 딕이 고의적으로 냉소와 함께 사용한 장치들이 어떤 부분에서는 삭제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남아 있는지, 영상화와 흥행이라는 토끼를 잡기 위해서 어떤 부분이 첨삭되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도 원작을 읽은 사람으로서의 소소한 재미일 것이다.
밥만 먹어도 재밌지만, 요리사를 쳐다보며 요리과정을 알아가며, 그리고 요리의 기원까지 알게 된다면 더 재미있지 않겠는가.

덧.
각 단편의 역자가 다른데, 그것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작은 재미가 될 것이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작품해설에서 임포스터에 대한 설명이 본문과 일치하지 않는데, 아마 이것은 많은 작품들이 그렇듯 수정본들 사이에서 발생한 내용상의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예상되는데, 만약 가능하다면 같은 작품의 다른 버전을 찾아보는 것도 즐거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에는 실려있지 않지만 스캐너 다클리라는 영화도 한번쯤은 볼만하다 싶다. 볼만하다-고 하는 이유는 그다지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기 때문인데, 하지만 그래도 한번 찾아보시길 권하고 싶다. 기법상의 이유로도, 주제라는 이유에서도.
http://AstralPlan.egloos.com2010-01-27T21:30:090.31010



덧글

  • 2010/01/28 16:5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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