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꽃, 와리스 디리 독서

 한국인들에게 있어 할례의식은 매우 친숙한 일이다. 남성에게 있어서 할례란 성기의 남는 포피를 일부 절제하는 일을 말한다. 그곳에는 신경이 집중되어 있어 시술 후의 성감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신체의 기능과 건강에는 큰 이상이나 변화가 없다(비위생적인 시술에 의한 감염으로 인한 사망 및 후유증은 물론 존재한다). 흔히 한국의 남성들이 고래를 잡으러 간다고 하는 바로 그 시술과 같다는 말이다.
 이렇게 남성 포경/할례에 대해서는 남성들은 물론이고 대다수의 여성들마저 어떤 일인지를 알고 있을텐데, 그렇다면 여성할례는? 여성할례라는 무지에 의한 무식하고 무지막지한 관습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안다. 그렇지만 그것이 정확히 어떤 행위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원래 할례라는 것은 기독교에서 신과의 연결을 증거하는 하나의 의식이었다. 신에게 바치는 신체의 일부로 국부의 살을 이용하는 것은 그만큼 신앙을 중요하고 소중히 생각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며, 인간의 근원이자 기독교에 있어 특히 의미 있는 성적인 부분에 대한 표현으로 그곳의 살을 바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할례라는 것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아프리카 지방의 토속 전통인 이것은 여성의 임신기능만을 남기고 성기를 도려내는 행위이다(cf.고자라니). 남성의 성기는 성기능과 쾌락기능이 한 곳에 합쳐져 있는 반면 여성의 경우는 해당기관이 분화되어 있-는편이-다. 따라서 이중 쾌락 기능의 부분을 절제/거세해 버리는 것이 여성할례이다(지역에 따라 절제의 범위는 다르다). 거기에 여성의 성기가 결혼 후 남편의 손으로 풀려날 때 까지 실로 꽤매 봉합해서 성기능의 사용을 막기까지 한다.
 현상적인 할례의 의미가 그렇다면 그 기저의 의미는 무엇일까. 남성들의 욕심에 의해 여성들의 권리를 제한하고, 여성의 피(월경혈)가 갖는 재생과 부활의 의미가 두려워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게 막고, 신비의 결정체인 임신기능에 대한 남성에 의한 제한, 그것이 여성할례의 의미이며 많은 문화권들이 두려워하고 경이로 여긴 여성의 신비에 대해서 인류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나쁜 종류의 행동이다.
 우스운 사실 중 하나는, 아프리카나 무슬림계 국가처럼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고, 순결을 강조하며, 그것을 위해 많은 희생을 여성들에게 요구하는 국가들이 남성들에 의해 자행되는 성폭력이 심각하고 사회일반적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우스운 이유는 그들이 여성에게 순결을 요구하면서 사실은 그들이 여성의 순결을 유린한다는 현상이다. 물론 이것은 역설적이라는 점에서는 우습지만 어떻게 보면 하나도 우습거나 신기할 이유가 없는 현상이기도 하다. 여성들에 대한 그런 요구-순결강조-가 남성들이 여성들에 대해 가진 상위 및 지배계층적인 인식에서 기초한 것이라고 파악할 때, 그만큼 여성들을 우습게 보고 함부로 유린하는 것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따라서 여성할례가 타파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 자체의 위험성과 불합리, 남성에 의한 여성지배구조의 반영이자 재생산의 도구, 인격체인 신체에 대한 폭력이라는 점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럼 여성할례가 가지고 있는 나쁜 의미에 대해서는 1차적으로 여기까지만 생각해보고, 그것이 없어져야 한다고 결론 지은 뒤에, 이것을 현대사회(여성할례가 지금도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에서 현대화 사회라고도 할 수 있다)에 한번 적용해보자.
 할례는 여성의 능동적인 수용과 표현을 막아, 전인적으로 수동적 인격을 부여하고 남성에게 순종하도록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이 현대인들의 사회에서도 일어난다. 비록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할례는 신체를 제한하고 변형시킨다. 그것이 정신의 변형을 목적으로 하더라도 우선은 신체의 변화가 선행한다. 따라서 쉽게 눈에 보이며 그것을 행하는 방법도 막는 방법도 명확하게 눈에 보인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정신을 제한하고 변형시킴으로써 나타난다. 이 정신에 대한 제약은 1차적으로 정신에 대한 것이지만 2차적으로 그것이 신체 혹은 신체의 반응에도 영향을 주기도 한다. 여성성에 대한 주입, 규격외의 여성 정신 발달에 대한 거세, 근현대는 물론이고 지금도 사회 일반적으로 많이 행해지고 있는 이런 일들이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여성할례라고 하겠다. 여성을 수동적인 인간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할례라고 할 때 사회 전체가 주는 압박, 항거할 수 없는 폭력, 이것도 어찌 무섭지 않겠는가. 거기에 맞춰 성형수술을 하고, 그 압박 때문에 몸의 신호에 둔감해지고, 다른 사람을 보며 스스로에게 충실하지 못하게 되는 것, 실로 무서운 일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책을 보자, 또 많은 사람들을 보자, 신체와 정신 그 무엇에 관한 그 어떤 제약도 진정한 제약이 될 수 없음을 여러 와리스들이 보여주고 있다.
 
 오래전에 남성할례의 경우에도 사망율이 30%에 달했다는데(피시술나이가 지나치게 어린 이유도 있다. 관습상 생후 8일) 여성의 경우는 어땠겠는가, 비교적 현대에 들어와서 사망율을 조사한 결과가 30%정도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이전에는 사망율이 더욱 높았을 것이다. 만약 양쪽의 경우에서 비정상적인 세균감염등을 제외한다고 해도 여성할례의 경우 과다출혈만으로도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그만큼 국부는 많은 신경과 혈관이 지나가는 자리이며, 여성할례는 그것을 절제하는 일이고, 따라서 막대한 고통을 유발한다). 그렇게 줄어든 여성은 희소성 때문에 남성의 관리를 받고 남성의 소유물이 되는 악순환, 사회구조는 어떻게, 얼마나 드러나는가의 차이는 있어도 어느 사회에서나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의 본성은 두려운 것을 경원시하는 습성이 있다. 남성에게 피라는 것은 공포의 존재였고, 그것과 함께하는 여성이 바로 그러한 경원의 대상이었다. 남성에 의해 거세당하지 않은 여성성, 우선은 거세당하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는것이 하나의 작은 목표라면, 그 후에 그렇게 거세당하지 않은 여성들이 내는 목소리가 미래에 필요한 여성들의 목소리일 것이다.
 여성할례를 막는 것은 작은 일이지만, 앞서 말한 큰 목표를 위한 하나의 보탬 정도는 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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