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적혀 있는 팜플렛을 얼마전 어머니와 함께 모 사찰에 갔다가 가지고 오게 되었다.
그런데 꼭 저렇게 장애인과 함께라고 적어야만 하나, 특히 불제자의 입장에서 깨달음을 추구한다면 더욱더 차별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장애인과 함께'라는 것은 나는 장애인이 아니에요~정상인이에요~라는 뉘앙스를 충분히 풍기는데 말이지.
물론 현실적으로 회의 활동이 장애인에 대한 봉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이상 홍보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꼭 저렇게 표현해야만 한다는 것은 사회 전체가 결국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이분법적 사고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크고 작은 장애를 가지고 살고 있다. 나 같은 경우에도 발가락 관절이 하나가 불편하니 이는 지체장애의 관절장애의 일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시력이 나쁜 경우도 장애라고 할 수 있고, 장애인이라고 불리지 않더라도 정말 한치 앞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눈이 나쁜 사람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나이와 함께 찾아오는 노환, 또 그중에서도 여성들이 겪는 갱년기 질환들. 또 현대인들의 친구 정신병.
장애인과 비장애인, 소위 정상인을 구별한다면, 그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신체 기능의 우월성? 혹은 표준에 달하는 원활성? 우월함이 기준이라면 결국 슈퍼맨이 아니고서야 어느 한부분 남보다 떨어지지 않는 자는 없을 것이고(그 슈퍼맨도 클립토나이트 광석에 과민반응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_-), 표준을 기준으로 한다면 또 그 표준은 누구인가라는 점에서 결국 상대적인 이야기 밖에 안돼서 같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결국, 장애인이라는 표현은 그 자체가 자체모순적인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중간지대의 사람들을 제외한 극단의 사람들은 확실히 구분지을 수 있다-라는 주장이 대두되는 것이다. 솔직히 오토다케 히로다타씨 같은 분을 장애인이라 부르는 것은 옳은 일일 수 있다. 그야말로 오체五體가 불만족된 상태이니까. 하지만, 삶에 대처하는 자세라든가, 조금 속물적으로 벌어들이는 돈이라든가. 조금은 이상한 이야기지만 그 영혼의 질이라든가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비장애인보다 오히려 오토다케씨쪽이 우월한 것이다.
이쯤되면 이번엔 장애인 개념의 존재의의가 불명확해진다. 장애인은 정상인보다 열등하다, 보호받아야 한다, 돌봐주어야 한다, 라는 패러다임이 무색해지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평등하다. 평등하지만 각 개체는 차이를 가지고 있고, 능력의 총합이 다들 같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평등하기에 본질적으로 존중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전 인류가 자신을 포함한 나머지 모든 인류에 대한 존중을 마음에 새긴다면 그것은 결국 소위 장애인이나 정상인 모두에 대한 존중이 될 것이며, 장애인 개념에 따른 도움도 필요가 없어진다. 힘이 약한 아이의 짐을 힘센 어른이 대신 들어주듯이 걷기가 불편한 사람을 옆에서 잘 걷게 도와 줄 수 있는 것이며, 공부를 잘 못하는 사람은 옆에서 가르쳐 줄 수 있고, 사교성이 떨어지는 사람은 주변에서 먼저 친근히 대해줄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사회에서 장애인의 개념이 존속 중이며, 그 필요성이 있다는 것 정도는 인정할 수 있지만, 결국 나는 그런 개념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평균인에 의한 인간 평등이 아닌 개체의 아이덴티티를 존중하는 평등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남성과 여성, 흑인과 백인, 나아가 연소자와 연장자, 각 국가 간의 상호관계, 어쩌면 우주에까지 통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본다.
- 2008/07/2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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